'트롯신이 떳다' 남진 신인시절 유물급 영상 대방출 만우절 같은이야기


안녕하세요 클로입니다.

3월 25일에 이어   4월 1일 만우절에 SBS 오후 10:00시 방영되는 '트롯신이 떳다'에 한국의 엘비스프레스 남진선생님이 출연 하신다고 합니다.

오빠부대의 창시자이기도 하면서 수많은 명곡을 낳으신 남진 선생님 

아버지.어머니 세대라면 더욱더 모르시는 분들이 없으며

트롯을 들어봤다 혹은 좀안다 하시는분들에겐 우상의 대상이었죠.

4월1일 방영될 '트롯신이 떳다'에서는

지난주에 이어 과거 리즈시절의 모습이 방영 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트롯신들의 신인영상도 눈여겨 볼법 하지만

50여년전 남진선생님의 신인시절 공개가 역시 주목한만한 부분이죠.

그중에도 전설 중 전설이라 할수 있는 '가요계의 양대 산맥' 남진선생님과 나훈아선생님의 듀엣영상까지 공개되며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출연한 트롯신들은 "이분들이 없이는 트로트를 이야기할 수 없다"

"노래만 발표하면 국민가요가 됐다"라며 남진선생님의 남다른 클래스를 입증했습니다.



남진선생님은 본명 김남진

1945년 9월 27일생 (만 74세 닭띠 O형)로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출생하였으며

목포 유달중학교. 문태고등학교. 한양대학교(연극영화과 학사)를 나오셨으며

1965년 서울 플레이보이로 데뷔 하셨습니다.

현재는 대부분 가수로서 기억되고 있으시지만 원래는 영화배우를 지망한 연극영화과 출신이셨고, 전성기에는 수십편의 영화에 출연한 영화배우입니다.

런라남도 목포에서 목포일보 발행인이자, 제 5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문옥님의 늦둥이 장남으로 

태어난 남진선생님은 부유한 환경에서 어린시절부터 연극과 영화에 심취했다고 합니다.

폭포중학교 재학 때부터 닐세다카나 폴 앵카등의 팝송을 즐겨 불렀던 남진선생님은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레스토랑에서 팝송을 불러 밴드마스터에게 가수 제안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부친인 김문옥님은 반대하였지만 대학도 연극영화과를 진학해 영화배우로서의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레스토랑의 밴드 마스터로부터 당시 최고 인기가수 남일해님의 곡을 만들던 작곡가 한동훈님을 소개 받았고, 그로부터 자신의 음악학원에 등록하고 연습생 생활을 할것을 제의 받습니다.

영화배우의 길을 꿈꿨던 그(남진선생님) 이었지만 당시 순전히 학원에 있던 여학생이 이뻐서 등록을 하고 연습생을 시작했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불과 몇개월 후인 1965년 첫 음반을 레코딩 하게됩니다.

데뷔곡은 한동훈님이 작곡한 '서울 푸레이보이'라는 스탠다드 팝을 연상시키는 곡이었지만

완벽하게 대 패배. 실망한 그는 낙향했습니다.

다시 작곡가 한동훈님이 당시 오아시스 레코드사의 전속가수를 제안하였고 두번째 음반을 발표했으며 첫번째 음반과 달리 방송에도 제법 방영되고 히트 바로 직전까지 갔지만, 당시 노래 제목이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국가에 의해 금지 처분곡이 되었습니다.

금지곡이 된 타이틀 곡명은 '연애 0번지' 

두번째 음반도 실패하자 그는 다시 고향인 목포로 낙향하여 술로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렇게 지내던 중 그의 어머니가 두번째 앨범에 소록된 다른곡인 '울려고 내가 왔나'라는 트로트 곡을 밀면서 이곡으로 다시 도전 하는게 어떻겠느냐 라고 권유를 합니다.

이곡은 2집 레코딩 중 작곡가인 김영광님꼐서 남진선생님꼐 부르게 했으나 남진선생님이 트로트를 부르기가 창피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던 곡이었습니다.

이에 김영광님은 그래도 노래가 아까우니 내가 불러서 곁다리로 음반 맨 끝에 넣겠다 라고 했으나 사정이 생겨 녹음 시간에 오지 못하게 됐고 어쩔수 없이 곡 수는 채워야 했기에 남진선생님은 내키지 않지만 녹음해서 앨범 맨 끝에 집어 넣었는데, 이곡이 그댜말로 대 히트를 치면서 남진이란 이름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게 됩니다.

트로트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일단 트로트 곡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이듬해인 1966년 박춘석님이 작곡하신 '가슴아프게'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되면서

그해 MBC 신인가수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때부터 남진 선생님은 영화배우로도 대활약 하게 되며 가요계와 영화계를 넘나드는 

빅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 후에 나온 로커빌리 스타일의 불멸의 히트곡인 '마음이 고와야지'는 그를 단순히 트로트 가수로만 제한하지 않고 가요계의 독보적인 캐릭터를 인정받는 중요한 자리에 위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잘생긴 얼굴,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와 유사한 창법과 무대 액션에 당시 소녀 팬들은 열광하였고 이후 '그대여 변치 마오' . '님과함께' 와 같은 대표곡으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최고의 전설기를 누리고 있던 때인 1969년 해병대에 입대를 하고 베트남전에도 파병되었다.남진성생님이 무릎팍도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원래의 파병기간은 1년으로 되어있었지만

귀국하여 베트남에서 동료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는 것은 대한남아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여단장에게 부탁하여 2년간 파병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수많은 동료들의 전사를 눈앞에서 격으면서 사람은 죽으면 다 똑같다라는 사실이 와 닿았다고 합니다. 언론에서 쉽게 찾아 볼수 있는 남진선생님의 모습은 파병초기에 촬영된것이라고 하며

베트남은 날씨가 너무 더워서 군복을 제대로 입을수도 없었고

인터뷰에 따르면 베트남에서 몇 차례 죽음의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최고의 순간 군대행을 택하고 71년 군 제대후 국내에 돌아와 보니 자신의 파트너 박춘석님은 라이벌 나훈아 선생님과함께 '물레방아 도는데' 등의 히트곡을 쏙아내는 중이었기 때문에

협력을 접고 새로운 파트너인 남국인님을찾아 곡을받아 다시 정상의 반열에 서게되는데

그 노래가 남진선생님의 최고의 히트곡 '님과 함께'였습니다.

제대 후 더욱 폭발적인 사랑을 받게된 남진선생님은 국내 가수 최초로서 서울 시민회관에서 귀국 기념 공연을 열었고 컴백 4개월 만에 TBC남자가수상과 MBC 최고 가수상에 오릅니다.


남진 선생님의 대표곡

· 마음에 고와야지

· 나에게 애인이 있다면

· 님과 함꼐

· 가슴 아프게

· 울려고 내가 왔나

· 둥지

· 빈 잔

· 너와 나

· 미워도 다시 한번

· 내영혼의 히로인

· 모르리

· 우수

· 김포가도

· 빗 속에서 누가우나

· 목화 아가씨

· 빈 지게

· 나야 나

· 이력서

· 그대여 변치마오

· 파트너

· 당신이 좋아(with 장윤정)

좋은곳이 더 많지만 추리고 추려 저정도가 있습니다.

올해에도 콘서트나 디너쇼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있다면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

물론 있다 하더라도 경쟁이 치열해서 가능할지도 의문입니다.

트로트계의 한 획을 그으신 남진선생님 지금도 건강한 모습으로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건강히 오래 활동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남진선생님과 나훈아선생님의 레전드 신인시절 일화와 영상은

1일 SBS 오후 10:00시 방영되는  '트롯신이 떳다'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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